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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국

당 현종과 양귀비가 놀던 화청지, 서안 성벽

by 해오라비 이랑 2010. 8. 26.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712-756)은 아들의 아내인 양귀비를 취하여 이곳 화청지에 그녀의 궁을 짓는다.

이전까지는 여자는 이곳 화청지에서 온천욕을 할 수 없었는데 현종이 이런 관습을 없애버렸다.

현종은 736년에 사랑하던 무혜비를 잃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소문에 자신의 18번째 아들인 壽王의 아내인 수왕비가 절세의 미인이란 얘기를 듣는다.

자신의 술자리에 초청하여 본 순간 마음을 뺐겨버린다.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6세인 현종은 22살인 며느리를 태진이란 호를 내리고 태진궁에 살게한다.

아들 수왕에게는 다른 여인을 보내 위로한다.

나중에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어 양귀비로 불리게 되는데 이후 양귀비는 황후같은 도도한 행동을 하였다.

양귀비의 이름은 楊玉環이었고 고아 출신으로 양씨 집에 양녀로 들어가 있었다.

이전까지 정무에 열중하였던 현종은 양귀비에 빠져 정무를 보지 않게된다.

양귀비의 심한 질투심 때문에 두번이나 폐출되기도 하였으나 모두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칠월 칠석날에 화청궁에서 두사람은 견우와 직녀를 보며 사랑의 맹세를 한다.

"하늘에는 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蓮理枝가 될지어다"

비익조 : 암수 한몸인 전설의 새

연리지 :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인 전설의 나무

 

이렇게 국사를 보지 않자 결국 안록산이 반란을 이르켜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도망가다

장안에서 수백리되는 馬嵬驛(마외역)에서 자신의 장병들에 포위되어 장병들이 양귀비를 주살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양귀비는 목을 매고 죽게 된다.

 

예전에 건릉을 갔다가 양귀비묘에 들러 보았는데 양귀비 조각상을 세워 놓았고 돌로 묘를 덮었다.

흙으로 덮힌 묘에서 사람들이 몰래 흙을 파갔기 때문이다.

이 흙을 얼굴에 바르면 양귀비처럼 미인이 된다는 낭설 때문이었다.

 

 

 

 

 

 

 

당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욕하던 "연화탕"

두 사람이 사용하는 경우에 입수하는 계단을 두곳에 배치하였다.

 

 

 

 

양귀비 전용 "海棠湯"

 

 

궁녀들의 온천탕

 

 

양귀비는 온천욕한 후에 머리털을 바람에 말리려고 높은 정자를 세웠다.

 

 

 

 

 저녁에는 "長恨歌" 오페라를 화청지에서 한다.

長恨歌는 백거이가 지은 두 사람의 사랑 얘기를 시로 지은 것이다.

여산에 만든 별과 달 세트.

 

 

 

 

서안 성벽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때 축성한 것이다.

동서남북으로 대문이 있었는데 출신성분에 따라 출입할 수 있는 성문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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