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만석인 등산 버스를 타고
장수대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20분이다.
대승폭포까지는 사람들로 길이 막혀 지체되었다.
당단풍이 붉게 물들어 뒤에 올라오는 등산객의 얼굴이 붉은 홍조를 띤다.
우리나라 3대 폭포중의 하나인 대승폭은 수량이 줄어들어 볼 품이 없다.
여름철 비온 뒤에 올라와 보면 정말 장관인데.
대승령을 넘어 안산을 우회하면 12선녀탕 계곡으로 접어 든다.
12선녀탕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계곡과 푸른 탕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탕은 8개인데 왜 12선녀탕이라 하였는지 모르겠다.
십이선녀탕 계곡을 처음 알게된 것은 대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지금은 미국 신시내티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와 둘이서
마장동에서 출발하는 금강운수를 타고 남교리에서 내렸다.
10월3일 연휴이고 중간 시험 기간이라 등산후에 시험 볼 예정이었다.
그래도 시험은 걱정이 되었는지 책 몇권을 짐속에 가져 갔다.
당시에는 시험 전 일주일은 휴강이라 등산하기 좋았다.
십이선녀탕에서 귀떼기청봉을 지나 대청봉까지 서북주능을 탈 예정이었다.
지금은 능선에 길이 잘 나있지만 당시엔 등산객이 많지 않아 능선 길이 험하기 그지 없었다.
도중에 2박을 하고 3일째야 귀떼기청봉 아래에 도착하였다.
보슬비가 내리고 능선엔 물이 없어 귀떼기골로 물을 뜨러
정글길로 내려갔다 오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지금은 텐트사이트가 넓게 되어 있지만 당시엔 텐트 하나 겨우 칠 공간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침에 텐트에 나와 짐을 싸면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얼굴이 부었고 햇볕에 타서 완전히 반군 같은 얼굴이다.
능선에는 6.25전쟁 당시에 죽은 군인들의 작은 무덤과 비목이 있었고,
탄피도 여기저기 녹슬어 땅에 반쯤 묻혀 있었다.
그해 겨울에 장일남의 "비목"이란 가곡이 한참 유행하였다.
또 그 다음해 겨울에 KBS에서 이곳 군인무덤을 발굴하는 다큐멘타리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귀떼기청봉 능선에 가면 그런 흔적은 하나도 없다.
복숭아탕이라고 하는데 나는 하트탕이라 부른다.
그냥 등산객들 따라 가다보면 이 탕은 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