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말에 방영된 前漢(BC 206-AD 5)시대의 황제 한무제의 일대기를 다룬 TV시리즈 "한무제"를 ching 채널에서 보았다.
요즘 재방송을 하여 다시 보기 시작하였는데 정말 볼만한 중국역사 시리즈물이다.
흉노와 전쟁을 펼치는 몽골 초원의 가을 풍경은 정말 볼만하다.
방영이 끝나서 한무제에 대한 책을 읽어 보았는데 거의 역사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작품 임을 알 수 있었다.
군더더기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물 시리즈와 비교가 된다.
진나라의 진시왕이 죽고 혼란기를 거쳐 유방이 황우를 물리치고 재차 중국을 통일한다.
유방이 한나라의 태조(BC 206-195)이고 제 7대 황제가 劉撤 한무제(BC 141-87)이다.
16세에 황제에 등극하여 태황태후의 섭정을 잠시 거치다 실권을 쥐게 된다.
태조 때부터 막강한 흉노와 화친 정책을 펴왔으나 한무제는 강공정책으로 일관하여 흉노를 물리치고 영토를 넓히게 된다.
한무제 누이의 마부였던 위청이 대장군이 되어 용맹을 떨치게 된다.
화폐제도를 통일하였고 소금, 철, 술 등의 전매 제도를 채택하여 중앙 집권을 튼튼히 하였다.
제자백가 사상을 인정하지 않고 유교를 국교로 삼았다.
한무제는 張建을 서역으로 파견하여 실크로드를 처음으로 개척하였는데 장건이 대월씨국에서까지 갔다 귀국하는데는 13년이 흐른다.
장건은 대월씨국에서 철의 강도를 높이는 성분을 가져와 한나라 군대의 무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아직 국가 형태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한반도에 낙랑군을 포함한 4군이 설치된 것도 한무제 때이다.
한나라 이전의 중국 역사를 기술한 "史記"의 저자 사마천도 한무제때 중서령이란 벼슬에 있어 한무제의 명으로 사기를 쓰게 되었다.
史記는 本記 12권, 表 10권, 書 8권, 世家 30권, 列傳 70권, 도합 130권에 이른다.
사마천은 흉노와 전투에서 사로 잡혀 포로가 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한다.
궁형이란 去勢당하는 형벌로써 사대부 최고 수치의 벌이었다.
제 2차 "무고의 난"에 의해서 38세인 황태자를 무제가 살해하고 몇년 후에 한무제가 죽고나서
한나라는 외척과 환관들의 세상이 되어 쇠망의 길로 간다.
11대 황제 원제(BC 49-33)에 이르러서 흉노보다도 국력이 약해져 흉노의 대선우(왕)에게 후궁을 시집보내게 되었다.
후궁 중에서 누구를 골라 보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 화공에게 후궁들의 얼굴을 그려 황제에게 보이게 하였다.
못 생긴 후궁을 보낼 작정이었던 것으로 이때 결정되면 흉노의 나라로 가야 하였다.
다른 후궁들은 화공에게 뇌물을 주어 잘 그리게 하였는데 王昭君이란 후궁은 미모에 자신이 있어 뇌물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화공이 그녀를 가장 못생기게 그려 올렸다.
황제는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선발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가장 아름다운 후궁이었다.
일단 결정된 사안이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왕소군은 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였다.
황제는 분을 삭이지 못하여 그림을 엉터리로 그린 화공들을 처형하였다.
왕소군은 흉노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읊은 詩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다음 구절이다.
장안이 4월 쯤 봄일때 몽골은 눈이 쌓여 봄이 아주 늦게 오기 때문이리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더라)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2006년 몽골 초원에서 담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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