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는 논산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국도변, 천호산(386m) 아래에 있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창건된 사찰로 개태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후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축조하였다 한다.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眞殿)이 있다.
대전에 일이 있어 지나가다 들렀다.
호남선 철길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 자주 보았던 곳인데 이제야 찾아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개태사는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작은 규모의 절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가 아름다웠다.
(1) 보물 제219호 개태사지 석조 삼존불입상 :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은 대적광전 안에 있으며 남쪽을 주시하고 서 있다.
본존불은 아미타불로서 높이 4.15m,이고 복연(伏蓮:아래로 향한 연꽃)의 방형 기단 상에 놓여 있다.
불상의 형태는 크게 돌출된 육계에 둥그런 얼굴이며, 이마에 백호가 선명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나 조각 솜씨는 우수해 보이지 않는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오른손과 왼손의 위치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보살상은 높이 3.12m 내외이다.
(2) 주철제 철확 :
개태사 경내에는 직경이 3m, 높이 1m인 거대한 주철로 만들어진 가마솥이 있다.
개태사가 가장 번창했을 때 스님들이 천여명이나 있었는데 이 솥은 스님들의 공양을 끓이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어느 해 대도견성(大道見省)한 스님이 개태사를 찾아와 {얼마 후 대홍수가 나서 본당의 부처님상이 위험할 것이니
이 가마솥으로 본당에 이르는 물길을 막으면 불상은 안전할 것이다.} 라고 하며 어디로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스님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큰 스님의 말씀인지라 그 말에 따라 가마솥으로 본당 앞을 막았다.
과연 대홍수가 났는데 불상은 안전하게 되었지만 가마솥은 떠내려가 지금의 연산면 고양리 다리 근처에 묻히게 되었다고 전한다.
일제시절에 파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