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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삶의 香氣

七支刀

by 해오라비 이랑 2005. 9. 2.

日,10년만에 공개…백제왕이 倭에 하사한 ‘칠지도’ 칠지도(七支刀),10여년만에 공개 일본 나라현 덴리시 소재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칠지도(七支刀)가 지난 93년 이후 10여년만에 일반에 공개된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이 오는 4일부터 2월8일까지 여는 특별전에서 이소노카미신궁의 다른 유물과 함께 선보이는 칠지도는 백제가 왜(倭)의 왕실에 하사한 것인지, 헌상한 것인지를 둘러싸고 한·일 두나라 학계가 첨예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국보다.

칠지도란?
백제(百濟) 왕이 왜왕(倭王) 지(旨)에게 하사한 철제(鐵製) 칼. 
소장/소재지 :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
크기 : 길이 74.9cm
종류 : 철제칼
길이 74.9cm. 일본 나라현[奈良縣] 덴리시[天理市] 이소노카미신궁
[石上神宮]에 소장되어 있다. 곧은 칼의 몸 좌우로 가지 모양의 칼이 
각각 3개씩 나와 있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으므로 
칠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에는 이에 관한 문헌기록이나 실물이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記)에 
"백제가 일본에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철(鍛鐵)로 만든 양날 칼로, 칼몸[刀身]의 앞뒷면에는 
61자(字)가 금상감(金象嵌)되어 있다. 
이 칼이 오랫동안 비장되어오다가 최초로 공개된 것은 
1874년 이소노카미신궁의 대궁사(大宮司) 
간마사도모[菅政友]가 명문을 판독하여 발표하면서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학자들의 노력으로 대체적인 내용과 
미지의 글자가 추가 판독되었으나, 그 명문의 마멸 부분 
및 그 해석에서 이견(異見)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명문해석에 따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앞면)태□(泰□) 4년 □월 16일 병오일 정오에 무쇠를 
백 번이나 두들겨서 칠지도를 만든다. 
이 칼은 백병(재앙)을 피할 수 있다. 
마땅히 후왕(旨를 가리킴)에게 줄 만하다. 
(뒷면)선세(先世) 이래 아무도 이런 칼을 가진 일이 없는데, 
백자왕(百慈王)은 세세로 기생성음(奇生聖音:길상어)하므로 
왜왕 지(旨)를 위하여 만든다.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다(1993.6월 蘇鎭轍의 해석)." 
이에 따르면, 무령왕릉의 지석(誌石)에서 보듯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백제왕이 중국의 연호나 사용하는 제후와 
같은 존재였다면 왜왕을 '후왕(侯王)'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름이 지(旨)인 왜왕은 중국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찬(讚)·진(珍)·제(濟)·흥(興)·무(武)의 '왜오왕(倭五王)'과 
같은 신분의 왜의 지배층으로서 
백제왕실과 인척관계에 있는 귀족으로 보았다. 
이렇게 해석할 때 부월(斧鉞) 및 도검(刀劍)의 
하사(下賜)가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신표(信標)라는
성격과도 부합하며, 하사 동기도 왜왕에 대한 일본열도
내에서의 대표권을 승인하는, 종주·신속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1935∼1936년에 부여 군수리 사지(軍守里寺址)에서 
칠지도의 일부로 여겨지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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