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은 예전에 교통편이 좋지 않아 가보기 참 어려운 산이었다.
몇 년전부터는 정월 보름날이면 달밤에 야간 산행을 즐기고 있는데,
이번엔 보름달을 맞으러 월출산을 가게 되었다.
밤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에 영암에 도착하였다.
삼호조선 공단 입구에 있는 어느 해장국집에서 감자탕 해장국을 먹었고,
山門을 지키는 이 없는 도갑사 解脫門을 통해 입산하였다.
국내 유일하게 국보 50호로 지정된 해탈문은 조선 초기 건물로써
주심포에서 다포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건물이다.
도갑사는 비교적 경내가 크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균형있게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어두운 새벽의 경내는 우리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잠시 동안 소란스러웠다.
산사의 정적을 깨는 나는 매우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절 뒤편 계곡의 다리를 건너니 부도탑 밭이 나온다.
월출산이 낳은 도선국사의 탑비도 있다.
부도밭을 지나니 눈이 제법 쌓인 등산로가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헤드라이트를 낀 어둠 속의 밤 도깨비들이
한줄로 정연히 올라오고 있다.
능선에 도달하니 구름없는 달빛 아래 억새밭이 나온다.
겨울 달빛은 차가움을 더 해준다.
구성봉에 가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동쪽에서 해가 솟아 오르고,
서쪽으로는 지기 싫어하는 달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구성봉으로 향했다.
능선을 따라 가니 정상인 천황봉에 도달하였다.
天王峰이 아닌 天皇峰이다.
추위에 지친 “박새” 한 마리가 바위 틈을 오가고 있었고,
바위 비탈의 흰 눈에는 산양의 발자국이 위태롭게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스를 박새에게 주니 맛있게 먹었다.
저 남쪽 산자락엔
아름다운 맞배지붕으로 지은 극락보전이 있는 “무위사”와
모전석탑이 있는“월남사지”가 있다.
보성 차밭보다도 더 아름다운 월출산 차밭이 초록색으로 아스라이 보인다.
천황사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눈이 많았다.
눈에 덮혀 있는 동백나무가 아름답다.
국보 144호인 마애여래석불좌상이 있는 곳으로 행했다.
마애여래불상이 국보로 지정된 것이 국내에 두개인데
다른 하나는 “백제의 미소”라 칭하는 서산의 마애여래불이다.
서산 마애불은 협시보살이 양쪽에 있고 백제시대 때 조각된 것이다.
좌불 형태로 돋을새움(양각)으로 새겨진 좌불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결가부좌 자세로 서해로 지는 낙조를 즐기고 있다.
서산 마애불도 서해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불교의 발생지인 정토국인 서역을 바라보는 것으로 추측된다.
장비도 변변찮은 시절에 이곳까지 올라와서
양각으로 조각한 솜씨는 고려인의 정성이리라.
<마애불 국보 144호, 마애불 오른쪽에 눈사람 모양의 산이 있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고, 눈은 지긋이 감았으며,
입은 두툼한 南道 사람을 닮은 모습인데 얇은 미소를 띄고 있다.
오른쪽에는 작은 동자상을 새겨 놓았는데,
마모가 되어 자세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른 아침이라 마애불은 좀 어두워 보였다.
해가 질 때 와서 보아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 완숙한 모양을 갖추지 못한
돌탑이 눈에 덮혀 아름다움을 더 한다.
돌탑과 마애불은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