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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그림이 있는 풍경

시들지 않는 꽃, "손상기" 작고 20주기전

by 해오라비 이랑 2008. 10. 29.

 

 

화가 손상기는 1980년 초에 인사동 화랑을 다니며 알았던 화가이다.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높은 담, 철망, 좁은 비탈길, 달동네의 작은 지붕들, 공작도시, 난지도.....

신체적인 불구로 인해서 가난이 그의 화폭에 함께 배어 있다.

그의 작품엔 붓의 거칠은 터치감이 남아 있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작품을 주목하였는지 모른다.

 

1949년에 전라남도 여수시 연도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3살때 구루병으로 척추 장애인이 되었다.

여수에서 늦은 나이(10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 고교도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없었던 모양이다.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위해서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화가의 길을 선택하였다.

1979년에 아현동 달동네에 화실을 차리고 주변의 풍경을 다른 시각으로 화폭에 담는다.

첫째 부인과 사이에 두명의 딸이 있었으나 부인은 가출하여 그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작은 화실에서 10여년간 많은 작품을 남기고 1988년에 생을 마감한다.

그를 한국의 "로트렉"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걸하면서 굶으면서,

전신을 휘감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열심히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영광이 아니고 忍苦이다.

허나 그 인고를 즐거움이라 느끼는 것에 매료되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 손상기 씀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손상기 작고 20주기전을 하고 있다.

"자라지 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 "공작도시", "가족 그리고 고향", 등으로 주제를 정하여 전시되고 있다.

20여년 전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내가 보았던 작품들도 있었다.

 

 

 

 

 

 

 

 

 

     고뇌하는 나무

 

나는 한 그루의 "자라지 않는 나무"

어디선가 사랑스러움을 가득 안고

예쁜 아이가 나타나 무럭무럭 자라게 하였네.

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가고

열매를 위하여 탐스런 꽃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데

그 꽃을 따려고, 그 가지를 자르려고,

그렇게 방해하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론을 달리하고.

 

그래도 나무와 아이는 짙게만

정성을 사루며 고뇌하고 있었네.

"고뇌하는 나무"가 되어도

굳센 의지를 잃지않고

영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네.

                           - 손상기 作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복사.

 

 

자화상

신체적 불구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난지도

그의 작품 중에 대작인 "난지도"(130x300cm)

밝은 색조로 그려 편안해 보인 작품이다.

 

 

달동네.

 

 

 

 

 

 

따스한 빛

 

 

 

 

자라지 않는 나무

 

 

 

 

 

그는 환하게 핀 꽃을 그리지 않고 꽃이 진 꽃을 그리거나 꺽어진 꽃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꽃들은 항상 "시들지 않는 꽃"이 되었다.

 

 

炎天

 

 

 

 

 

 

 

      醉女

 

화폭이 기운다.

빨래처럼 잡아 비튼

여인의 얼굴이 가벼운 엑센트로 떤다.

착란하는 손가락을 가다듬어 보지만

코는 유자코

눈은 뱀같이 간사스럽고

입술은 뒤틀린 고목껍질

이것 더 늴리리가 되면 어쩌나.

이젠 사랑할 수도

슬퍼할 집착도 없어졌는데

백치가 되어버린 나의 시야 속을

모딜리아니 나부상보다

더 이상하게 압박해 오는

기절할 현실

그래도 목을 학처럼 외로 꼬고

유혹하듯 눈웃음 치고 있네.

마주치는 눈동자를 급하게 외면하고

검은 색연필로 북북 지우다보면

흔들리는 화폭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피 빛깔 눈물.

이것 만약 살아서 나온다면

어떻게 하나.

"사랑해 주세요" 목을 안고 늘어지면

어떻게 하나.

      - 손상기 작 -

 

 

                            아현동 고개길에 예전에 많은 작부 술집들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가?

                            그 근처를 가본지 오래되어서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는 글을 먼저 쓰고 그렸다. 

                                    비발디 "4계"의 표제 음악처럼 손상기도 그림에 표제를 미리 달았나 보다.

 

 

 

 

 

"영원한 퇴원"

갈비뼈가 허파를 눌러 10발자국도 걷기 힘들었던 그는 항상 병원 신세를 져야 하였는데,

옆자리 침상에 있던 노인이 죽음으로써 이런 작품을 남겼다.

링거병을 표현한 것은 신문지를 바른 꼴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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