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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과 고적지

국보가 가장 많은 법주사

by 해오라비 이랑 2012. 10. 23.

 

속리산을 오르기 전에 법주사를 1시간동안 들러 보았다.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경내는 사람들로 법적거린다.

그래도 넓은 곳에 자리를 차지하여 불편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때 건물들이 다 탓지만 그래도 보존이 된 많은 보물과 국보를 간직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멘트상으로 우뚝 서 있었는데 지금은 금입사 청동불상이 되었다.

 

 

절 입구의 일주문

주변은 단풍이 잘 들기 시작하였다.

 

 

 

수정암

법주사 앞 계울 건너에 있는, 지금은 암자로 변신하였는데 예전에는 이곳이 스님들의 숙소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곳에 하루 숙박하고 스님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은 곳이라 감회가 깊다.

 

금강문

 

 

 

어려서 이 큰 바위 밑을 지나갈때 바위가 쓸어지면 어찌하나 걱정하며 지나던 곳이다.

지금은 그 아래에 노점상 같은 작은 점포가 잇어 흉물스러웠다.

 

 

마래여래좌상

고려 시대때 제작된 미륵불상으로 연꽃 무늬 의자에 앉아 있는 좌상이다.

 

 

 

 

 

 

바위 앞뒤 옆 할 것없이 이곳저곳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

이름 석자 새겨 놓은 사람들은 지금은 저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게다.

 

 

바위 뒤편에 있는 부도탑

 

 

수정암

 

 

 

 

 

 

유적물 탐사를 나온 초등학교 학생들이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다.

좋은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국보 64호 石蓮池

구름 무늬 간석 위에 연꽃이 둥둥 뜬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되었으며,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비슷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면 내세에는 극락세상에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표현하였다.

 

 

 

 

 

당간지주

국내에 몇개 남아 있지 않은 당간지주이다.

幢竿(깃대 당, 장대 간)이란 찰(刹)이라 불리며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달았다.

寺刹이라고 할 때 刹은 당간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 고종 3년(1866년)에 대원군이 국가재정과 왕권 강화를 위해서

전국 사찰의 많은 금속물을 수거해 가 당백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철당간지주도 뽑혀 파괴되었으나 순종(1910)때 다시 복원되었고 1972년에 다시 복원된 당간지주이다.

 

 

 

철확, 유형문화재 143호

전래되어 온 것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솥이다.

이곳에 스님들을 위한 비빔밥을 만들었을까?

 

 

 

국보 55호, 팔상전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지어졌으며 임진란때 소실되었고 인조(1628)때 재건되었다.

내부는 위층까지 뚫려 있고 4면에 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한다.

높이 22.7m로 현존하는 목조 탑 중에 제일 높은 탑이다.

 

 

 

 

 

통일호국 금봉미륵대불

1939년에 시멘트로 제작을 시작하다 625동란으로 중단되었으나 1964년에 완공하였다.

내가 1965년에 초등학교 때 와서 처음 본 것이 완공 후 1년 후였나 보다.

1990년에 붕괴 직전의 시멘트 미륵대불을 없애고 청동대불로 바뀌었다.

2000년에 청동대불에 금 80kg을 입혀 금동미륵대불로 변신하였다.

 

 

 

 

석조, 유형문화재 70호

돌 하나를 조각하여 만든 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법주사 세존 사리탑, 유형문화재 16호

고려 공민왕 11년(1362)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을 때 양산의 통도사에서

부처의 사리를 일부 가져와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국보 5호인 쌍사자석등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은 부처의 자비로 여러 재앙을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사자와 숫사자가 화사석을 받들고 있다.

꼬리 부분은 절단되어 사라졌는데 어느 쪽이 암사자일까?

왼편 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고 오른편 사자는 힘이 드는지 입을 벌리고 있다.

 

 

 

 

원통보전, 보물 916호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에 의해 건립되었고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인조 2년(1621)에 벽안대사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모꼴 평면에 단층으로 지어졋으며 높이 2.8m의 금입사 목조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석등, 보물 15호

팔각 석등으로 화사석 4면에 사천왕상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쪽은의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네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경내에 다른 2개의 석등이 있다.

 

 

 

 

 

보리수 나무

석가모니가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이 나무 아래서 해탈을 하였다.

부다가야에는 보리수 나무가 느티나무만하게 크게 자라 있다.

이 나무의 열매로 스님들의 염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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