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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국

젠커우 장성 트레킹

by 해오라비 이랑 2014. 6. 24.

북경 시내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이동하여 화이러우 시짜츠마을로 이동하였다.

가는 도중에 상당히 긴 계곡을 따라 버스를 타고 가는데 계곡 주변에 유락시설과 숙박 시설이 많이 있었다.

여가를 즐기려는 북경 시민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젠커우 장성은 복원이 잘 된 팔달령 장성에 비해서 명나라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사진 작가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예전에 본 만리장성 사진들은 이곳 풍경 임을 이곳을 보고 나서 알았다.

젠커우라는중국 말의 의미는 활이라는 뜻이다.

이곳 지형이 화살을 당긴 활 형상이라 젠커우라고 한다.

장성 초입에는 입산 금지 푯말이 붙어 있지만 입구에서 20위안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복원이 안된 만리장성의 성벽 위를 5km 정도 트레킹하였다.

무너진 곳도 있고 급경사 성벽도 있었다. 

성벽에는 큰솔나리가 피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고 모처럼 맑은 날씨로 멀리 시야도 좋았다.

 

들머리-장군수관 등정(40)-전각변-서유루정-동유루정-신견수성-간구~하산(3시간 30분 코스)

 

 

 

마을 들머리에서 바라 본 장성

 

 

 

 

 

 

 

덴마크에서 온 관광객들도 있었다.

이날 이곳을 찾은 팀은 두 버스 정도였고 일부 중국 사람들이 몇 명 보이는 정도로 한가한 곳이다.

 

 

 

 

 

 

 

 

 

 

 

뒤를 돌아다 보면....

 

 

 

 

트레킹한 구간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이다.

양쪽으로 절벽 단애가 펼쳐저서 이렇게 좁게 쌓았다.

 

 

 

 

외벽은 석회암을 사용하여 흰색으로 빛이 난다.

석회암은 화강암에 비해서 가벼워 운반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화강암 대신에 석회암을 사용하였다.

벽돌은 북경에서 먼 곳에서 만들어 수레에 싣고 와 사람들이 날라서 사용하였다.

 

전국시대에 기마 민족인 흉노의 침입을 막으려고 진, 조, 연 나라 등 7개국이 각각 쌓았고

秦나라가 전국을 통일을 한 후 몽염 장군 지휘하에 장성을 연결을 하였다.

몽염 장군은 10여년동안 장성을 축조하고 연결하는데 공을 들였다.

당시에는 흙벽돌 등으로 쌓았으나 600년 전 명나라때 오늘날의 모습처럼 돌과 벽돌를 사용하여 굳건하게 성벽을 만들었다.

청나라때부터 만리장성은 유명무실해져 관리를 하지 않았다.

만주족이 만리장성 이북까지 통치하게 되어 그리 되었던 것이다. 

  

秦시황제때 장성을 쌓는데 많은 병사와 인부가 동원되어 많은 고통을 주었다.

맹강녀(孟姜女)는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남편을 위하여 두툼한 겨울옷을 준비해 모진 고생 끝에 공사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남편의 유해를 찾으려고 성벽을 돌며 통곡하니 갑자기 성벽이 무너지고 남편의 유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군인들 막사

 

 

 

 

 

 

 

 

 

 

 

 

 

 

큰솔나리가 성벽에서 자라고 있었다.

 

 

 

 

 

 

 

 

 

 

 

성벽 아래 마을

 

 

 

 

 

 

 

 

 

 

 

 

급경사 오르막 성벽

친구는 앞서서 간다.

 

 

 

 

 

 

 

 

 

 

 

 

 

 

 

 

 

 

 

 

 

 

 

 

 

 

 

 

 

 

 

 

 

 

 

 

 

 

 

 

 

 

 

예전에 코타키나발루 등산 갔었을 적에도 이런 문장이 있었다.

 

 

 

 

 

마을에는 민박 집들도 몇군데 보였다.

 

 

 

비술나무

福을 가져다 준다고 중국 사람들이 많이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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