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t에 1980년대에 내가 3년을 살았던 곳이다.
플래미쉬로는 Gent, 프랑스어로는 Gand, 영어로는 Ghent 로 쓴다.
도로 표지명에 두 나라(Flamish, 프랑스어)로 표기되는데 어떤 지명은 완전히 스팰링이 달라 첨 온 사람은 무척 당황하게 된다.
벨기에 북서쪽은 Flanders지역으로 Flamish(네덜랜드어의 방언 정도)를 사용하고 남동쪽은 Wanlon지역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언어문제로 지역 갈등이 극심한 나라 중 하나이다.
브루셀은 원래 Flanders 지역으로 Flamish를 사용하였는데 정치의 중심이 되면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래서 동사무소도 한 동네에 플래미쉬 쓰는 사무소와 프랑스어 쓰는 사무소가 따로 있고,
브루셀자유대학은 같은 캠퍼스에 Flamish 쓰는 건물과 프랑스어 쓰는 건물이 따로 있다(같은 학과인 경우에도).
저녁에 이곳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Ibis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예전에 다녔던 빵집, 맥주집, 쇼핑거리 등을 다녀 보았다.
3년을 살았던 옛집도 가 보았는데 30년 전이나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2번을 Gent에 왔었지만 와이프는 이곳을 떠난 후 처음으로 왔다.
집앞 큰 도로에 겹꽃으로 피는 벗나무가 가로수로 심어 졌었는데 지금도 그 크기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벗꽃이 필 적에 런던 마라톤 대회가 열려 런던 시내의 벗꽃 길을 달리던 마라토너를 BBC방송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집 옆집은 치과인데 손님이 별로 없어서 의사는 뒷마당 정원의 잔디를 깍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하였고,
길 건너에는 자기의 집 거실에 병원을 차리고(가정의) 월수금 오전에만 진료를 보던 병원이 있었다.
일 많이 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이곳 의사들이 당시 참 부러웠다.
집 뒤로는 1500 병상이 있는 Gent 의과대학 병원이 있었는데 나도 한번 그곳에 신세진 적이 있었다.
한번 그 대학 병원에 갔는데 의사와 30여분 대화를 하며 진료를 받았다.
그렇게 오래 동안 환자와 대화하는 경우를 첨 경험하였었다.
우리의 대학 병원과 너무나 대조되는 대목으로 환자도 의사도 참 행복해 보였다.
하긴 6살이었던 딸 아이가 서울에서는 그렇게 소아과 병원을 많이 다녔는데 Gent에서 살고부터는 병원 출입을 한번도 하지 않았으니.
공기가 깨끗한 결과로 여겨졌다.
그곳은 비가 오면 자동차가 깨끗해지는데 한국에서는 비가 오면 자동차를 새차해야 하는 것을 보면 비교된다.
지금도 그곳 세차장은 거품과 물을 뿌리는 기능만 있지 걸레로 미는 기능이 없다.
딸 아이가 3년을 다녔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항상 정문에서 학생들을 마중 나와 있고, 행사를 하면 가장 먼저 많은 일을 한다.
학교 행사때 가 보면 음식 준비도 먼저 하고 학생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 주며 그 학부형들도 다 기억하는 그런 교장...
우리의 학교와 너무 대조적인 모습을 일찍 경험하였다.
이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참 바르게 성장할 것 같다,
우리나라 교장과 교감들도 방에 앉아 직무를 보기 전에 현장에 가장 먼저 접근해야 할 것 같다.
30년인 지난 지금도 우리는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학생들 등교시간과 퇴교시간에 학교 정문에 나와 있는 우리나라의 교장 교감을 보았는가?
우리나라에서 교장.교감의 직은 벼슬이고 교육자가 아니다.
겨울이 한국처럼 춥지 않지만
겨울에 딸아이는 내복바지를 입고 학교를 다녔는데 금요일 마다 실내 수영 수업이 있는데,
아이들이 내복입은 딸아이에게 왜 바지를 두개나 입냐고 물었다고 한다.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 눈에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점심식사는 소득에 따라 주일마다 돈을 지불하는데 소득이 적으면 정부에서 많이 보조금을 준다.
우리나라도 일율적으로 무상급식을 하지말고 소득에 따라 돈을 일정 비율 받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내가 살았던 De Pintelaan 거리
벗나무는 그때나 수형이 그대로이다.
1번지에 있던 빵집
이른 아침에 딸아이가 가서 빵 한봉지를 사왔는데 아이들이 오면 쫄깃거리는 과자를 준다.
딸아이는 과자때문에 일찍 일어나 그 빵집에 가고 하였다.
방부제나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아 빵이 참 맛있었다.
우리의 빵집 빵은 방부제와 첨가물을 많이 넣어 며칠이 지나도 곰팡이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파리바게트 빵을 사먹으면 속이 매우 쓰려 안 사먹고 그 대신에 떡을 사먹는다.
동네 빵집은 그동안 돈을 벌어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젊은 점원 여자에게 물어 보니 그 옜날을 기억 못한다.
하긴 그때 여자 점원이 태어나지 않을 지 모르지...
시내에 있는 ibis Hotel
신형 트램이 지금도 괘도를 달린다.
Belfry(종탑)
중세때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시간을 알리기 위해 도시 마다 건축되었다.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손되었다 재건된 성당
영국 침공의 독일군 전초 기지였던 Gent는 연합군 폭격을 많이 받았다.
오른편이 우체국
대한민국 국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 가 보다.
내가 있던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가끔 한국 선원들을 만났다.
Gent에도 대서양에서 들어오는 운하가 있어 수만톤의 화물선이 들어 오는 곳이다.
12세기부터 건축 중인 성당.
아직도 완성이 안되어 있다.
성 야콥 광장
Vreidag Market로써 금요일에 수산물 등 시장이 열려 자주 이용한 곳이다.
세인트 밥 성당
이곳에 반 에익의 "Mystic Lamb"의 유명한 성화가 있는데 공사 중이었다.
예전에는 시청사였다.
Hotel de Ville
새로운 건축물
점심에 마신 맥주
너무 맛있는 맥주가 많은 나라, 벨기에
이곳 맥주를 마신 사람이면 한국 맥주는 도져히 마실 수 없다.
맥주에 물 탄 한국의 맥주
한국 맥주는 호프값이 비싸 호프는 조금 넣고 호밀 대신에 사료용 미국산 옥수수가루를 60%나 넣어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맥주 향이 안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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