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소삐아 미술관은 유명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아또차”역 건너편에 있으며, 아침을 서서 먹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가 미술관 정문 앞에 있다. 이곳 카페에서 먹는 커피와 츄러스 맛은 일품이다. 서서 먹으면 가격이 싸고 테이블에 앉으면 좀 비싸다.
18세기 후반에 세워진 마드리드 종합병원을 개조하여 1990년에 현대미술관이 되었으며 외부에서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장해야 한다.
3층에는 스페인의 화가 달리, 미로, 피카소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되는 작품이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 大作(350Xx776 cm)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란에 대한 저항을 그린 작품으로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전시를 위해 스페인 공화정부(농민, 지식인그룹)가 피카소에게 의뢰하여 그린 작품이다. 스페인 민족주의파(군인, 재벌 그룹, 교회)를 지지한 독일 공군이 프랑코 장군의 지시로 바스끄 지방의 게르니카에 대한 대규모 폭격으로 많은 희생자가 났다. 이 폭격으로 마을 전체 가옥의 80%가 파괴되고 민간인 1500명 정도가 학살되었다. 피카소는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린 것이다.
민족주의파인 프랑코 장군 정부가 스페인에 들어서자 피카소는 이 작품을 스페인에 돌려주지 않고 뉴욕미술관에 보관하여 왔다. 프랑코 총통이 죽자 이 작품은 스페인 땅으로 귀환하여 1992년부터 소삐아 미술관에 전시된 것이다. “게르니카”는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상처 입은 말, 버티고 서 있는 소, 죽은 아이을 껴안고 있는 여인. 그래도 희망의 빛은 잃지 않고 있다. 햇살과 등불이 화면을 일부 채우고 있다. 흰색, 검정색, 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게르니카) |
마드리드의 스페인광장.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을 내려다 보는 세르반테스.
라만차 지방을 무대로 한 돈키호테.
마드리드 북쪽에 있는 라만차 지방을 가보니
왜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나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레알 왕궁.
관광버스를 타고 야경을 구경하였다.
이른 아침의 마드리드 중앙역, "아토차역"
건너편에는 소삐아 미술관이 있다.
소삐아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가 전시되어 있다.
세고비아를 경계로 해서 남쪽은 소나무 숲이 울창한 산림지역이다. 북쪽으로는 황량하고 메마른 구릉지이다. 해발 2800m높이의 산을 넘는 데는 많은 산길을 돌아 운전하여야 하였다. 아마도 높은 산맥 때문에 세고비아에 물이 공급될 수 있었으리라. 산 정상에는 스키장이 있어 리프트가 여기 저기 보인다. 산길을 한참 내려가니 멀리 “죽은 자들의 골짜기”에 높이 150m나 되는 거대한 십자가가 보인다. 프랑코장군이 스페인 내란 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고속 도로를 접어드니 제법 차량이 많았다. 레알 궁을 먼저 구경하려고 시내 한 중심에 들어섰는데 길을 벗어나 다시 외곽으로 돌아야 했다. 이제부터는 지도가 필요 없고 태양을 중심으로 감각적으로 그곳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높은 crown hotel이 보여 찾아갈 수 있었다. 차의 안전을 위해서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레알 궁 앞 음식점에서 스페인 맥주와 피자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계산서를 갖다 주지 않아 “라 구엔타!”를 여러 번 외쳤다. 그래도 젊은 주인은 친구와 담소하느라 정신이 없다.
레알 궁을 1734년에 불이 난 요새 위에 펠리뻬 5세가 왕궁을 건축하였다. 알퐁소 13세가 1931년에 왕 위에서 물러날 때까지 사용한 궁이다. 건물 양식과 내부 구성은 베르사이유 궁이나 비엔나에 있는 궁이나 거의 비슷한 스타일로 지어졌다. 규모가 조금 작은 점이 다르다. 부속 건물에 있는 중세시대 군인들의 갑옷과 무기들이 인상적이다. 수백년 된 무기들을 잘 보전하여 앞으로도 수많은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일 것이다.
Best western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골목길에 있는 데 깨끗하고 방도 넓었다. 차는 골목길을 한참 지나 전용주차장에 주차해야 했다. 방까지 짐을 날라다 준 호텔보이에게 5유로를 주었다. 주차하러 갈 때도 수다를 엄청 떨었다.
저녁이 되어 일식집이 보여 들어가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돈키호테와 산쵸 동상이 있는 Plaza de Espana를 걸어가는 데 공중전화 걸던 남자가 우리한테 고함을 지른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다가와 뒤로 맨 가방을 가리킨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뒤로 맨 가방을 열고 소매치기가 달려 들었나 보다. 가방에 모든 서류와 돈이 들어 있었다. 어느 아는 분은 삼년 전에 마드리드 길거리에서 3인조 강도를 만나 여권 등 모두 털려 귀국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저녁에는 호텔에서 나와 광장 앞에서 출발하는 city tour 2층 버스를 탔다. 네온사인 켜진 마드리드 시내는 아름답다. Comunida de Madrid 광장에 가니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돌아다닌다. 해가 져서 열기가 식은 저녁에 길거리로 나와 활동을 한다. 특히 영화 극장이 많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에 소피아 미술관을 구경 갔다. 아또차역 앞에 있는 소피아 미술관은 10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작은 가게에서 밀크를 넣은 커피와 추러스를 시켜 소피아 미술관 정문이 보이는 야외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먹는 경우와 서서 먹는 경우에 요금이 다르다. 출근하며 서서 먹는 마드리드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미국 젊은 여학생 몇몇이서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소피아 미술관은 20세기 미술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피카소의 “파란 옷을 입은 여인”과 “게르니카(Guernica)”가 전시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1937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서 스페인 공화국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하여 그린 그림이다.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도시에 프랑코 장군의 요청에 의해서 독일 공군이 분주한 장날, 시장에 폭격을 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에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이다. 공화파였던 피카소는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프랑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스페인에 돌아갈 수 없었다. 민주주의가 확립될 때까지 그림을 스페인에 돌려 주지 말라는 피카소의 요청으로 1981년까지 뉴욕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349x776 cm크기의 대작으로 흑백과 회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자녀의 죽음 앞에 비통해 하는 어머니, 스페인을 상징하는 부상당한 말, 대학살을 목격하고 경악하는 시민, 완전한 혼돈, 그래도 절망 가운데 피어나는 희망을 나타내는 꽃과 전등불! 이 그림 앞에 서서 나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외에도 Salvador Dali, Joan Miro, 초기의 아방가르드 화가 작품들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 커피를 마시며 쉴 수가 있다.
'[여행] > 스페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셀로나와 피레네 산맥 (0) | 2006.06.06 |
---|---|
세비야와 콜럼버스 묘 (0) | 2005.09.04 |
지브러홀터와 지중해 (0) | 2005.07.29 |
코르도바 (0) | 2005.07.29 |
세고비야(2003.7) (0) | 2005.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