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병풍 바위 밑에 우뚝선 바위를 ‘치마바위’라 한다.
연산군의 실정으로 박원종, 성희안 등이 주도한
중종반정[中宗反正(1506)]이 일어나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중종이 등극하게 된다.
이때 중종의 비는 신수근(愼守勤)의 딸 신씨였다.
당시 신수근은 중종 반정때 죽임을 당하였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므로 단경왕후 신씨는 연산군의 비 신씨의 질녀이다
반정 공신들은 죄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 하여 왕비의 폐위를 요청하였다.
반정 세력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무력하였다.
중종도 어쩔 수 없이 왕비 신씨를 폐하여 자기 집으로 가 있게 하였다.
왕후가 된지 7일만의 일이었다.
중종은 십여년이나 화락하게 지냈던 그 지극한 정분을 잊을 수 없었다.
중종은 가끔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의 신씨 집을 멀리 바라보곤 하였다.
한편 신씨는 폐비는 되었지만 중종에 대한 깊은 사랑의 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폐위 신씨도 매일 옥인동 뒷산 바위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중종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신씨는 대궐 안에서 입던 자기의 치마를 경회루에서 바라볼 때
눈에 잘 뜨이도록 인왕산 높은 바위 위에다 걸었는데,
아침에 내다 걸고, 저녁에는 거둬들이었다고 한다.
신씨는 소생을 두지 못했으며, 1557년 12월에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녀가 단경왕후로 복위된 것은 영조 때였고,
능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위치하며, 능호는 온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