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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디아

사르나트의 불교유적지

by 해오라비 이랑 2009. 2. 1.

 

 

바라나시역에서 흰색 택시를 200루피(5000원)에 대절하여 10여km 떨어진 사르나트에 갔다.

택시라야 20년은 됨직한 터덜거리는 것이고 운전수는 나이가 많은 아저씨인데 맨발이다.

 

사르나트(Sarnath)는 싯다르타가 첫번째로 다섯 제자에게 설법을 한 곳이다.

다섯 제자는 식사도 거르고 잠도 자지 않으며 같이 고행을 하였지만

싯다르타가 처녀 수자티에게서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다섯 제자는 싯다르타에게서 떠나 버린다.

제자들이 떠난 후에 홀연히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었고 자신의 지혜를 나누는 대상을 다섯 제자로 삼았다.

 

싯다르타를 변절자로 취급하며 떠난 제자들은 다시 찾아온 부처를 보고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를 청하며,

부처로부터 불교의 실천 수행인 "八正道"와 진리라 일컷는 "四聖蹄"를 경청하였다.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가면서 이곳은 불교 성지로 거듭났다.

당나라 현장법사가 이곳에 왔던 기록에 의하면 사찰이 30여개, 승려가 3000여명이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파괴되어 사르나트는 역사 속으로 숨어 버린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는 불교 유적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불교는 힌두교의 한 가지로 취급받는다.

힌두교 신들의 모습들이 부처 모양과 같다.

결국 불교는 인도에서 힌두교에 파묻치는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부다라는 존재는 힌두교 "보존의 신" 중에서 9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부다가 설법을 한 자리에 세워진 다마라지까 스투파(탑)와 다멕 스투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마라지까 탑은 아쇼카왕이 세운 이래 여러번의 보완 공사를 하였다.

탑안에 있던 부다의 사리함과 불상은 콜카타의 인디언 박물관에 있다.

 

다멕 스투파는  높이 33.5m로서 하단부는 마우리아양식, 상륜부는 굽타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 탑의 용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슬람 침입 속에서도 온전히 남아 있는 탑으로써 탑의 기원이 되는 탑이다.

네팔과 티벳에서 온 많은 불교 신도들이 탑 주위를 돌며 기도한다.

 

이곳에도 한국 절인 "녹야원"이 있다.

중국, 일본, 미얀마 절들이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이클릭샤를 타고 마을 안을 지나가면 녹야원이 나온다.

한글 간판이 반갑다.

맨발인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어 내 볼펜을 달라고 한다.

절 안에 들어 가니 점심시간이 되어 미리 온 한국 배낭여행객들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여자 대학생들만 8명이 모여 있었다.

혼자 온 학생도 있고 둘이서 온 학생도 있다.

한 학생은 감기에 걸려 여행하기 어려워 이곳에 쉬러 왔다고 한다.

내가 갖고 있던 타이레놀, 아스피린을 주었다.

남자 승려 혼자 절을 지키고 있으며 여행객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데 무료이다.

 

 

 

 

 

 

 

 

 

    다멕 스투파  -  티벳, 네팔에서 온 불교 신자들의 기원이 계속된다.

 

 

       다마라지까 스투파(탑)

 

 

    이슬람에 의해서 파괴된 탑이 있던 자리

 

 

 

 

 

 

      아쇼카 석주 :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로 많은 기록이 남아 있으나 파괴되었다.

 

 

 

 

 

 

 

 

 

 

 

 

 

 

    오체투지 절을 하며 탑을 도는 순례자.

 

 

   유적지를 수리하는 인도 여인

 

 

   티벳, 네팔에서 온 순례자들

 

 

 

 

 

 

   녹야원 근처의 마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