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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과 고적지

안동 낙동강가에 있는 병산서원

by 해오라비 이랑 2009. 11. 28.

 

 

선조 8년(1575)에 안동 풍산읍에 있던 풍산서원을 서애 류성룡이 낙동강이 훤히 보이는 이곳으로 옮겨와 병산서원이라 하였다.

영의정 류성룡은 임진왜란때 이순신과 권율 장군을 발굴 천거하였다.

1607년에 서애 류성룡이 죽은 후에 서원에는 그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다.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과 제향을 드리는 공간으로 이루어졌으며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대원군 시절에 서원철폐령이 내렸지만 이곳은 존속되었다.

 

서원 정문인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가 나오고 立敎堂이란 강당과 동재와 서재가 나온다.

후원에는 사당인 존덕사가 위치하고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전사청이 있다.

 

만대루에 올라 낙동강과 건너편의 병산(7폭의 병풍처럼 되어 있는 산)을 바라 보는 것이 가장 보기 좋은 풍광이다.

앞에 보이는 屛山은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사계절마다 와 보면 좋을 것이다.

만대루에서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앞에 있는 강과 산이 눈이 들어 올 것이다.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여름날에 낮잠을 자고 싶은 생각과 저녁엔 남포불 켜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만대루는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누각으로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공간이다.

통나무를 깍아 만든 만대루 누각에 오르는 계단,

거랭이 기법으로 주축돌에 세운 나무 기둥,

휘어진 모습 그대로의 나무들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건축물로 아름답다.

 

晩對는 두보의 시 "百濟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宣聽對)" 라는 구절에서 따 왔다 한다.

 

 

 

 

 

복례문

 

 

 

 

 

 

만대루

 

 

 

 

 

만대루에서 바라본 병산

 

 

서애 류성룡과 3째 아들을 모신 사당.

 

 

기둥 주축돌에 그린 8괘 중에서...

 

 

 

처마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막새대신에 이렇게 기와를 사용하였다.

총명하지 못한 후손들이 보기 좋지 않게 사용한 것 같다.

 

 

하인들이 사용하던 통시(화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