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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리스

미노안 문명의 중심 크노소스(Knossos)

by 해오라비 이랑 2011. 7. 28.

 

크노소스는 기원전 1700년경에 세워진 미노안(Minoan)의 수도로써

고대 크레타(Crete)의 중심지였으며 지금의 중심도시 이라클레오(헤라클리온)에서 5km 떨어져 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미노스 왕조(Minos Dynasty)의 후예인 미노스(Minos)가 살았다. 

 

미노타우어 신화(myth of Minotaur)는 미노스의 전능과 아테네인들의 크레타에 대한 충성을 보여준다. 

거대한 미노스(Minos) 왕의 궁전과 대저택 등이 크노소스 유적지에 있다.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에 인간들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였고,

그 이래로 8000년 동안 파괴없이 사람들이 살아왔다.

1000여년 동안 크노소스는 그리스와 유럽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최초의 발굴은 1878년에 크레타 이라클레오 시민인

미노스 칼로카이리노스(Minos Kalokairinos)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많은 단지와 함께 궁전의 서쪽 부분이 발굴되었다.

영국의 귀족인 아서 에반스(Arthur Evans)가 신화를 믿고 과수원 땅을 사들여

1899년에 궁전 전체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크노소스의 옛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건물을 복원하였다.

 

중앙과 서쪽 궁전 아래를 발굴 중 미노안 궁전 유적 아래 10m 깊이에서

신석기시대의 마을(BC6000~3000)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BC 2000년 직후 거대한 구 궁전(Old Palace)이 세워졌다.

신궁전(New Palace)은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첫번째 궁전이 지진과 화재로 파괴된 이후에 다시 지어졌다.

이 유적지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크노소스 궁전이다.

궁전의 마지막 파괴는 BC 1400년 직후에 일어났는데,

산토리니섬의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파괴되어 화산재에 묻히게 되었고 그 이후 전설로 남게 되었다.

 

 

 

 

 

주차장 앞의 음식점

주차장은 무료인데 늦게 가면 만차이기 때문에 아침에 가면 좋다.

 

 

 

 

예전에 왔을 적에 가을이라 산 위의 있는 것이 갈색이어서 곡식 낮가리를 쌓아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올리브 농장의 나무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큰 저장고

 

 

사재를 들여 발굴한 아서 에반스 동상

 

 

 

 

 

대리석이 수천년동안 빗물에 녹아 날카롭게 되었다.

 

 

 

왕에게 선물을 들고가는 프레스코화.

원본은 이라클레오 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있는 것들은 복사본이다.

 

 

 

 

 

 

미노안은 황소에 관련된 전설을 갖고 있는 곳으로 황소 그림이 있는 그릇, 프레스코화 등이 많다.

황소 뿔 조각품

 

 

 

 

 

백합 왕자가 그려진 프레스코화

 

 

 

 

중앙 광장

 

 

 

황소가 그려진 프레스코화

 

 

 

 

 

 

 

왕의 집무실

 

 

 

 

 

 

 

Griffin이 그려진 프레스코화

몸은 사자이고 머리는 새인 그리핀을 미노안 사람들은 신성시하였다.

미노안 사람들은 이런 작은 신성한 것들을 神으로 믿었으나 사원은 짓지 않았다.

 

 

 

Piano Nobile

왕의 집무실 뒤편으로 계단을 올라가 보면 많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방이 있다.

이곳을 놓치면 안된다. 예전엔 이곳을 지나쳐 버렸다.

 

 

 

 

원본은 이라클레오 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복사판으로 황소 위에서 묘기 부리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햇살이 잘 들게 설계된 미노안 궁전

 

 

 

 

 

여왕의 침실 옆에 있는 목욕탕.

커다란 용기에 물을 길어 부어 사용하였다.

 

 

여왕의 침실

 

 

돌고래가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여왕의 방

 

 

 

 

 

 

 

 

파괴되기 전의 궁전 상상도

 

 


 

 

 

크레타섬의 미노안 문명의 중심지 크노소스궁전에는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 (Minoan Bull)라는 뜻이다.

머리는 소의 머리이고 목 아래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와 황소 사이에 태어났다.

왕은 이 괴물을 죽일 수는 없었다.

어엿하게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과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코노소스 궁의 미로에 갇혀 사람 고기를 먹고 산다.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가 크레타섬의 왕이 되었을 때 미노스는 신과의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서

신에게 바칠 희생물로 소를 바다에서 나타나게 해 달라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빌었다.

포세이돈은 하얀 황소를 보냈는데, 소가 너무 아름다워 미노스는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어기고 소를 숨긴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이 황소를 사랑하게 만든다.

왕비 "파시파에"는 하얀 황소에게 음심을 품었지만 이 황소는 너무 난폭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손 재간 좋은 "다이달로스"가 나무로 암소를 한 마리 만들고 "파시파에"로 하여금 그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하얀 황소가 가짜 암소를 진짜로 오인해 사랑하고, "파시파에"는 그 씨를 받아 아기를 낳는다.

이 아이가 바로 소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왕은 이 괴물을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us)에 가두어 버렸다.

미노스 왕은 당시의 약소국 아테네 왕을 협박해서 해마다 12명의 선남선녀를 바치게 했다.

미궁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 주기 위해서였다.

영웅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자였다.

그는 사람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희생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12명의 선남선녀들 사이에 끼어들어 크레타로 갔다.

크레타에 도착했을 때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귀공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공주는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을 테니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녀를 아내로 맞아 함께 데려가겠다는 약속만 하라고 애원했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크노소스 궁전의 미로인 라비린토스였다.

누구도 미로에서 살아 나올 수 없었다.

"아리아드네"는 미로의 설계자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이달로스"는 그녀에게 굵은 실 한 타래를 주었다.

실의 한쪽 끝을 라비린토스 입구 기둥에 단단히 동여매고 안으로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는 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아리아드네"에게서 실타래를 넘겨받은 "테세우스"는 실을 천천히 풀어 가면서

라비린토스 깊숙이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덮쳐 목을 베었다.

"테세우스"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돛을 올리고 크레타를 탈출했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크레타를 떠난 테세우스 일행은 낙소스 섬에 도착했다.

이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디오니소스 神이 아리아드네를 보고 반했다.

디오니소스는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맞고 싶으니 조용히 섬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던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 배를 떠나게 했다.

잠에서 깨어난 아리아드네는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사람이 떠난 것을 알고 절망과 슬픔에 잠겨 울었다. 

다음날 일행은 아테네를 향해 배를 몰았다.

그러나 모두 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사실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테세우스도 아리아드네를 잃은 슬픔에 정신이 없어 미처 아버지와의 약속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배가 돌아올 때가 가까워 오자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는

매일 수니온(Sounion) 언덕에 올라 남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은 돛을 단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본 왕은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절망하여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

그가 빠져 죽은 바다를 그 이후로 '아이게우스 바다' 즉 '에게해'로 불리게 되었다.

그후 아테네의 왕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아티카를 통일하여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민주정치를 실시하여 아테네의 국가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