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BC 27년에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신전이었지만 하드리아누스 황제때인 11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지붕은 43m 이고 9m 크기의 구멍은 햇살을 받게 되어 있는데 당시의 기술로 구멍 천장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9m 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달빛은 내부의 청동 벽면에 반사되어 신비함을 주게 되었다.
기독교 성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후에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609년에 성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신전이 아닌 성당으로 사용한다.
1624년에는 이곳에서 청동을 뜯어다가 군대의 대포 제작에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청동 부조물이 훼손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8-19세기에 정비된 것으로 옴베르토 1세 국왕과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 정면
입구
판테온의 천장 창문인 직경 9m의 오쿨루스
라파엘로 무덤
옴베르토 국왕 묘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17세기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가 이곳에 성당, 궁전 분수를 만들어 현재의 광장이 되었다.
광장 중앙의 파우미 분수는 베르니니가 제작하였고, 나일강, 라플라타강, 갠지스강, 다뉴브강을 상징하는 조각물을 붙였다.
Sant' Agnese in Agone
점심 식사를 하는 식당 앞에서 연주하던 청년이 경찰의 검문을 받고 있다.
오래 전에 비해서 경찰의 활동이 눈에 띄게 보였다.
청년에게 잔돈을 좀 주었다.
모로 분수
무어인의 조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 루이 데이 프란체시 성당
카라바조의 "성 마테오 연작"으로 장식되어 유명하다.
성당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중세 시대의 어느 기사의 초상화가 있는데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있다.
프랑스 루이 9세의 초상화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인가?
그냥 잊혀질 인물의 초상화 처럼 보이지만 이 성당의 어엿한 주인이다.
제 7차 십자군 원정에 주도적으로 참전한 프랑스 루이 9세를 위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제 8차 십자군 원정 중 튀지니에서 역병으로 죽은 프랑스의 왕이다.
루이 9세는 로마 바티칸이 염원하던 충성스런 중세 왕이다.
"성 마테오의 간택", "성 마테오와 천사", "성 마테오의 순교"
마테오(마태복음)와 관련한 일화를 카라바조가 1599-1602년에 그린 그림이다.
성 마테오가 천사의 말을 복음서에 적고 있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13세기에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로 미네르바 사원이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33년에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받은 곳이다.
내부에는 1380년에 죽은 성녀 카타리나의 묘지가 있는데 머리는 시에나에 묻혀 있다.
1455년에 죽은 화가인 안젤리코, 1506년에 죽은 조각가 안드레아 브레뇨, 1547년에 죽은 추기경 피에트로 벰보 등의 묘지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시작하여 피에트로 우르노바스가 완공한 "그리스도"
야한 모습의 크리스도!
성녀 카타리나의 묘지
1380년에 죽은 성녀 카타리나는 프랑스 아비뇽에 유배되어 있던 교황을 설득하여 로마로 돌아오게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작은 오벨리스크를 대리석 코끼리 등에 얹었다.
포폴로 광장
시간이 없어서 가 보지 못한 곳인데 다음에 가게 되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로마의 경계로써 북문이 있는 곳인데 Videl Corso 길이 이어져 있으며 로마 군사들이 개선하던 옛길이다.
근처에 괴테가 18세기에 1년 9개월간 머물며 지낸 숙소(괴테하우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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