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西安에서 서쪽으로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면,
唐고종과 측전무후가 합장된 거대한 建陵(산의 정상부만을 깍아 만든 묘)이 있다.
묘의 크기는 서울의 북악산 만하다.
그 아래 2km 떨어진 곳에는 태자 李賢의 석실묘도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이현은 측전무후의 둘째 아들로서 어머니 측전무후에 의해서 684년에 피살되었다.
이전에 첫째 아들도 황제에 등극하였다가 어머니 측전무후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자신이 공들여 닦아놓은 권력의 기반을 친아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측천무후(624~705)는 당(唐) 태종(고구려를 침략했던)의 후궁이었으나 태종의 아들 高宗의 황후가 되었고
고종이 죽은 후에 친아들 두명을 죽이고 여황제가 되었다.
이때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때였고.
경사진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중간쯤 오른편에 벽화가 있는 데, 외국 사신들을 알련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곰팡이가 끼는 등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아마도 지금쯤 형체도 없이 벽화는 사라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高麗의 사신 두명이 아랍 사람과 함께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당시는 高句麗라 하지 않았나 보다. 일부 학자들은 후대에 高麗와 구분하기 위해서 句자를 중간에 넣었다 주장한다).
태자 이현의 지하 30m 아래의 석실에 들어가 보면 천정에 벽화가 있다.
천정에는 달 옆에서 방아 찧는 토끼와 나무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동요로 불렀던 내용이 7세기 당나라 태자 무덤 천정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동요에 나오는 桂樹나무는 원산지가 중국이고 중국 桂林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이다.
계수나무의 열매는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생각하였으며 죽은 자의 무덤 벽화에 그려서 저승에서도 불로장생하라는 뜻으로 그렸다고 한다.
西쪽 세상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죽은 자의 세상으로 여겼는데 당나라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였나 보다.
고구려의 벽화에도 몇군데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어느 곳인지 모르겠다.
1924년에 윤극영 선생이 작곡한 "반달"이란 노래에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작사 가사는 당나라 漢詩에도 있다.
아마도 漢詩를 선생이 번역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더구나 당시에 상록수든 활엽수든 계수나무는 한국에서 자라지 않던 나무였다.
일본에서 들어온 같은 이름의 다른 활엽수인 "계수나무"가 요즘 단풍이 멋있게 들고 있다.
그 단풍 잎에서 향이 진하게 난다.
활엽수인 이 나무를 계수나무라 하는 것은 일본에서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
요즘은 골프장과 도로변, 아파트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과천 현대미술관 입구에 있는 일본 계수나무의 향이 진하다.
골프장 캐디들은 "설탕나무"라고 한다.
가을에 낙옆질 때 설탕 끓이는 향이 진하게 나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마치 어린이 동요에 나오는 계수나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상록수인 계수나무
(중국 계림에서 2007년 10월에 찍은 계수나무, 10월에 흰꽃이 피고 향이 좋다.)
(태자 이현의 석실묘 중간 오른쪽에 있는 사신도 벽화 중 고려인,
한국의 어느 자료에는 신라인이라 표기하였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토끼와 계수나무
토끼가 여우처럼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계수나무"라고 부르는 일본 활엽수 나무.
과천 현대미술관 앞에 있는 일본 활엽수 계수나무.